2.낡은 사진 한 장

 산을 내려온 권 상열은 차문을 열고 들어와 히터를 틀어 언 몸을 녹였다. 차안에 온도가 올라가자 잔뜩 웅크러져 있던 몸이 서서히 스물 거리며 녹아갔다. 눈이 사정없이 내려 이대로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이곳에 온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안했다. 집은 물론이고 회사에다가도 이야기를 안했다. 잘못하면 이대로 고립되어 실종 될지도 몰랐다. 그는 몸이 어느 정도 녹자 서둘러 차를 움직여 보았다.

BMW 차량은 서서히 눈을 털고 움직여 갔다. 일단 이 한적한 곳을 벗어나야 했다. 눈이 너무 내려 길인지 벌판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다행히 초행길 치고는 무난하게 길을 찾아 큰 도로 까지 빠져 나왔다. 큰 도로는 어느 정도 제설 작업이 이루어지고 염화칼슘과 모래를 뿌려 동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운전하여 휴게소 까지 들어왔다. 간단하게 커피를 한잔 시켜먹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언제 들어도 또랑또랑한 아내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어디예요? 연락이 안돼서 걱정했어요? 눈이 많이 오는데 괜찮 은거죠!”

뚝뚝 정이 묻어나오는 그 다정한 말에 코끝이 찡했다. 지혜는 어머니를 인정해 줄까? 문득 그 생각이 났다. 그녀는 귀한 집에서 무남독녀로 자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해가 안 된다면 구 태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냥 비밀에 부치면 되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자기만의 문제 일수도 있으니...

“응! 나 지금 일 때문에 강원도 와 있어! 염려 말아요!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하고 갈 테니..”

그는 그렇게 다정하게 말했다. 공연히 목소리가 잠겨 들어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지만 아내는 무슨 눈치를 챘는지

“여보!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안 좋아 보여요! 괜찮은 거죠! 조심해요! 사랑해요! 여보!”

그렇게 애교 섞인 비음으로 말을 했다. 그녀는 지혜로운 여자이었다. 벌서 결혼 생활이 거의 10년이 가까워 오건만 아직도 신혼 기분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아내와 통화를 끝내고 차에 돌아온 그는 문득 지갑에서 낡은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그 사진은 몹시 오래된 듯 누렇게 퇴색되어있었으니 모서리가 찢겨나간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얼굴이 동글하고 귀여운 젊은 여인이 밝게 웃으며 사내아이를 안고 직은 사진이었다. 사내아이는 하체가 발가벗겨져 고추가 나와 있는 사진이었다. 아마 백일 사진인 것 같았다. 

“아! 어머니! 그리운 내 어머니!”

권 상열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어느새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게 차 있었다.

기분 나쁜 유기붕을 만나고 불쾌하게 돌아선 권 상열 변호사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교도소 문을 나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다시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과에 가서 유기붕의 영치 물을 확인 했다. 영치 물은 로렉스 시계. 그리고 반지. 지갑. 그런 것들이었는데 그중에 종이봉투가 하나 있었다.

권 상열은 종이봉투를 열었다. 거기에는 이 낡은 사진과 신문 조 까리 들이 나왔다. 그런데 그 신문 조각의 기사 내용이 모두 자기와 관련된 것 이었다. 심지어 사법 고시 합격자 명단에서부터 태권도 경기 입상사진. 군 병영 생활 사진. 등 등 기분 나쁘게 살인자의 영치 물에서 왜? 자기의 관련 물이 나오는가 말이다.

“이게 뭐야! 내가 그놈의 교활한 함정에 놀아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참을 수 없었다. 권 상열은 그 종이봉투를 가지고 싫지만

유기붕이를 다시 찾았다.

“유기붕! 이게 뭐냐! 왜? 네놈의 나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가지고 있는 거지? 말해라! 도대체 네놈의 속셈이 뭐냐!”

권 상열 이는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감정이었다. 여차하면 주먹으로 쳐버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유기붕의 표정은 진지하였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믿지 안하실줄 알지만 그 스크랩은 변호사님의 친 어머니가 하신 겁니다. 저에게는 양어머니 되시는 분이시구요?”

뭐야! 친 어머니!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나는 지금 집에 어머니가 어엿하게 계신데 무슨 개수작이란 말이냐!

“뭐야! 이친구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친어머니라니? 당신 정말 돌았구먼!”

권 상열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는 하다가 안 되니까? 아주 엉뚱한 발상을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 말을 안 믿으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죄 값으로 죽을 놈이 무슨 미련이 있어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다만 죽기 전에 그렇게 평생 자식을 그리워하면 사셨던 분의 원이라도 풀어 드리고자 해서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저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주셨던 분입니다. 비록 그분 뜻대로 살지 못했지만 죽어가는 마당에 그분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탁합니다. 제발 제 말을 흘려듣지 마시고 봉천동 한빛 마을에 가셔서 그분에 대해 알아보십시오! 그분 함자는 최 연화 이십니다.”

유기붕은 아주 간절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은 눈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아까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그의 모습에 권 상열은 당황하였다. 무슨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영치 물에서 그 낡은 사진 한 장만을 가지고 교도소를 나온 권 상열은 그 후로 그 사진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리 유기 붕의 말이 간절했어도 엄연히 부모님이 살아계신데 이상한 정신병자 살인마 사형수의 말 한마디로 그런 헛된 일을 할 만큼 한가롭지도 안했고 또 그럴 마음이 없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유기붕은 사형을 언도 받았다. 사형을 언도 받아도 그것이 결정되어 형이 집행되는 것은 금세 결정되는 일이 아니었다. 짧으면 일 년 아니면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형이 집행되거나 아니면 무기로 감형되어 다시 10년 이상 20년 사이 사회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기붕 사건은 사회의 지대한 관심 탓인지 형이 확정되고 일 년도 채 안된 어느 날 전격적으로 형이 집행 되었다.형이 집행되는 날 하판사로부터 긴급연락을 받고  유기 붕 형집행장에 참석하게 된 권 상열 에게  유기 붕이 유언으로

“변호사님!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죽거들랑 제 뼈 가루와 유품을 이 세상에서 오로지 단 하사람 나에게 정을 주셨던 우리 어머니에게 직접 전달해 주십시오.  ”

하면서 간절히 부탁을 하였다.

권변호사는 이것 똥 밟은 기분이었으니 죽은 자의 마지막 부탁이니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 부탁을 안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그의 유품과 유골을 그의 양어머니인  최연화(崔蓮花)에게 전해 주기로 하였다. 봉천동 언덕길은 몹시도 가팔라서 차가 올라가지 못 했다. 그런 산꼭대기 후미진 한쪽 끝에 루핑으로 지붕을 한 행복천사의 집이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중증 장애인들을 돌보는 이곳에서 20여명의 장애인들이 살고 있었다. 최연화 여사는 오십대 후반에 매우 곱상한 중년 여인 이었다. 권 상열이 찾아가자 최여 사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이것이 유기붕 씨의 유골입니다. 마지막 부탁으로 어머니가 어머니 손으로 뼈가 루를 뿌려 달라고 했습니다.”

권 상열이 그렇게 이야기 하며 유골함과 유품을 전달하자 행복천사의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없는 살인마의 죽음을 이곳에서는 그렇게 애절하게 슬퍼하는 것이었다.

“몹쓸 놈! 세상에 대한 원망은 다 부질없는 짓이라 하였건만 어쩌다 그런 몹쓸 짓을 저질러 이 모양이 되었니? 부디 다음 생에서는 죄업 지고 태어나지 말고 좋은 부모 밑에 좋은 집에 태어나 거라! 으흐흑”

유골함을 받아들고 서럽게 우는 최 여인을 두고 이상하게 권 상열 변호사의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안했다.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온 권 상열의 머리에 슬피 울던 최연화 여사의 모습이 사라지지 안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어딘가 팽개쳐 두었던 그 누런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 봉투 속에 여인이 그 아이가 왠지 자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어려서부터 나는 한 번도 내가 부모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헛된 망상을 한단 말인가?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불효야! 내가 공연히 그녀석이 걸은 마법에 현혹된 것이야!”

권상렬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얼른 그 누런 봉투를 수습하여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히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힌 자신에게도 도망가고 싶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 지혜가 준비해놓은 허브 욕탕에 몸을 좀 푹 담가야 하겠다. 그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때니까? 권 상열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차 시트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조용한 명상 음악을 틀었다. 이대로 푹 잠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牛 甫  임 인 규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