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무언(無言)의 그림자

 권 상열 변호사는 왠지 자꾸 걸리는 봉천동의 그 여인 최연화를 잊으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그것은 집에서 자기만 위해서 애를 쓰시는 엄마 홍현희 여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가 철들고 결혼하여 아이 둘을 두고 있는 지금까지 어머니 홍현희 여사의 헌신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감생심 한 번도 홍 여사가 친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을 꿈에서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나 정신은 묘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부정하면 잊으려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이후 늘 자기 주위에 최연화 여사 같은 여인이 늘 밟혔다. 하도 이상하여서 하루는 뒤돌아 그 여인을 미행해서 불러 세워보니 전혀 다른 여인이어서 당황하여 사과 한 적도 있었다. 자기가 너무 신경과민이 아닌가 하여 신경과에 가서 상담도 맞아 본적이 있었다.

슬립 머신 부정 대출 사건이 터졌다. 권 상열이 그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엄청난 금액의 사건이라 서로 맡으려 한 것을 지난번 사장하고의 안면 대문에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보통 골치 아픈 사건이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 조직 폭력배 간의 알력 싸움까지 개입되었다. 변호사인 상렬 까지도 살해 위협을 받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 변론을 포기하기 에도 이미 늦어 버렸다.

변호사 개업 이래 이렇게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에는 처음이어서 할 수없이 경호회사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였다. 새까만 양복을 입은 보기에도 날렵한 청년들이 오고가는 모든 장소에 동행하였다. 이런 지경이니 그동안 관심을 두었던 최연화 씨의 문제는 자연히 서서히 잃어버렸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최 연화는 자꾸만 생각나는 아들 모습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때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는데 사람 욕심이 그런 것인지 한번 만나보니  자꾸만 보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서 던지 하루에 한번 아들 권 상열 변호사의 얼굴을 직접 보아야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히 아들에게 방해가 될까싶어 망설이고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늠름한 모습을 보고 나면 그 진흙 같은 사창가 절망 속에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고 승환 이를 만난 것 같은 설렘에 흥분되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두근두근 하였다.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승 환 씨! 당신도 저 모습 보면 대견하시죠! 당신은 없지만 내 아들 훈이(권 상열)가 저렇게 있으니 나는 행복하답니다. 행복하고말고요!”

그렇게 최연화는 늘 기쁜 마음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무언의 그림자처럼

권 상열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한 번씩 연화가 나타나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여기는  샬롬 나이스 파 회장 기 장호(奇障鎬)의 사무실이다. 샬롬나이스파는 신흥폭력 조직으로 강원도 영월 출신 전 권투선수 출신이 서장호가 정선의 한 호텔의 슬림머신 업체의 이권을 장악하고자 만든 조직이었다.  그는 서준 오비파 서준석(徐俊錫)이  정치인을 동원해 모 은행에서 부정 대출을 받아낸 사건을 검찰에 제보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국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변호사로펌회사 “메인”의 대표변호사인 권 상열이 이 사건을 맡은 것이다. 권 상열은  유능한 변호사 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맡은 변론의 85%이상이 승소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보기 드문 케이스 이었다.

그렇다면 서 준석이 풀려나는 것도 시간문제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그자를 막아야 했다.

“야! 짱구! 그래 애는 준비 되었나!”

기장호가 담배를 부 벼 끄면 말했다. 옆에 대기해 있던 곱슬머리가 대답했다.

“네! 똑똑한 놈으로 골랐습니다. 고아 출신으로 연고가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까지 서 준석이 밑에서 근무한 놈입니다. 만약에 경우 스스로 죽기로 했습니다. 그놈 누나가 하나 있는데 백혈병 환자입니다. 한 장 정도 그 여자 명의로 저축해서 주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기 장호는 짱구 정 구길(鄭具吉)을 믿었다. 녀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일은 그에게도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일이었다.

 그가 고른 아이는 22살의 이 진철(李進哲)이었다. 진 철은 어려서 고아원에 누나와 함께 맡겨진 고아이었다. 여섯 살 되던 해 누나는 부자 집으로 입양되어 갔다. 진 철 이와 함께 가기를 원했지만 그 집에서 여자아이만 원했기 때문에 싫다는 누나 이 보희(李寶姬)를 원장이 강제로 입양시켜 생이별을 시켰다. 그때 진철은 원장 사모하고 창경원에 놀러가 있었다. 그 뒤 진 철은 헤어진 누나를 찾아 아홉 살 때 고아원을 도망 나와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누나를 찾아 헤맸지만 만날 수 없던 누나는  얼마 전 술집에서 만났다. 진 철이와 헤어진 누나도 얼마 후 그 집을 뛰쳐나와 고아원을 찾았지만  진 철 이가 이미 도망간 뒤이었고 결국 누나는 술집 색시가 되어 있었고 운명적으로 진 철을 만났지만 그 충격으로 쓰러지게 되고 응급실에 실려 간 누나 보 희가 백열 병 환 자 라는 게 밝혀진다. 진 철은 두목 서 준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서 준석은 일언지하에 도움을 거절 하고 오히려 부하들을 시켜 실 컨 패서 내 쫓는다.

이런 이 진 철에게 접근한 것이 짱구 정구길 이었다. 진 철은 짱구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 했다. 자기는 잘못 되어도 누나만 잘 살면 그만인 것이다. 짱구는 1억의 돈을 이보희 통장으로 만들어 진 철에게 들려주었다. 쓰레기 같은 인생 1억이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 원무과에 통장을 맡긴 진 철은 무균 실에 누나를 만나 실 컨 울고 난 후 홀가분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의 품에는 권 상열을 해칠 잭나이프가 숨겨져 있었다.

사람의 육감은 비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여자의 육감. 아니 어머니의 육감이라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 연화 씨는 무엇인지 모르나 권 상열의 주위에 흐르는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직감 하였다.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안전을 책임지는 보디가드들이 다르고 있지만 혹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느낀 날부터 최연화 씨는 양복에 넥타이 검은 구두 양복을 입고 남장을 하였다. 될 수 있으면 권 변호사와 같은 옷을 사서 입었다. 멀리서 보면 권 변호사인지 착각할 차림 새 이었다.

그렇게 한 열흘이 지난 어느 날 퇴근길 집 앞에서 이었다. 권 상열의 집은 청파동에 있었다. 청파동은 조금은 언덕진 곳이 많았다.  상열의 BMW 차량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차 한 대가 권 상열의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내려왔다. 운전수는 당황하여 순간적으로 핸들을 좌로 꺾었고 차는 전봇대를 들이 맞고 멈추어 섰다. 보디가드들이 당황하여 내려서 그 차를 쫓았고 차는 골목을 내려가고 있었다. 권 상열이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골목 옆에서 무엇인가 쏜살같이 내 달려드는 것이 있었고

“안 돼 ! 훈이야!”

 하면서 동시에 뛰어드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너무 동시에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었고 그 그림자는 피를 흘리면 쓰러졌고 그 그림자를 찌른 사내는 뛰어온 보디가드들에게 잡혔으나 이내 혀를 깨물어 피를 내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그림자는 남장을 한 최 연화 씨이었다. 그리고 즉사한 사내는 이 진철 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 응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최연화는

“훈이야! 훈이야!”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권 상열은 당황했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가 있었고 그 칼을 대신 맞은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때 자기를 괴롭혔던 의문의 여인 사형수 유기붕이 자기의 친어머니라고 주장했던 그 여인 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자기 대신 목숨을 던진 여인. 아무 연고도 없는 사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음 까지도 불사할 수 있단 말인가? 권 상열은 머리가 아팠다. 응급실에 도착한 최연화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권 상열을 찾았다. 그리고

“변호사님! 부탁이 있는데요! 저를 어머니라고 한번만 불러 주세요! 변호사님이 제 잃어버린 아들 같아 서요! 예”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였다. 권 상열은 자기 대신 칼을 맞고 죽어가는 여인의 소원을 아니 들어줄 수 없어 어색하게

“어머니! 어머니!  ”

그렇게 목이 메어 불렀다.

“오냐! 내 아들! 훈아! 훈…….”

최연화는 그렇게 권 상열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피를 너무 흘렸고 칼이 들어간 자리가 치명적인 곳이었다. 연고자가 없는 최연화 씨는 결국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묻었다. 권 상열은 최연화의 장례식에 최선을 다 하였다.

그리고 슬림머신 사건은 권 상열 변호사의 승리로 끝났고 그 사건을 주도했던 샬롬나이스파 기장호 일당도 일망타진 되었다. 권상열은 평소에 최연화가 운영하던 행복천사원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 인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그 전화 한통을 받기 전 까지는…….

                        牛甫 임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