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어머니의 일기

“ 권 변호사 님! 저 행복 천 사원 원장 백 서희(白 瑞喜)입니다. 돌아가신 최연화 원장님의 일로 한번 찾아뵈었으면 하는데요?”

나긋나긋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이었다. 최연화 원장의 후임으로 복지재단에서 선임된 백 서희는 깔끔하고 야무진 30대의 복지 사 출신이었다. 얼굴도 곱상한데다가 목소리도 정감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편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직업인 변호사에게도 기분 좋은 일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화를 받는 순간 권상렬 변호사는 가슴이 철컹했다. 묘한 일이었다. 이십대도 아니고 여자에게서 춘정을 느낄 나이도 아닌데 왠지 불안하고 설레었다. 그렇지만 약속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내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약속장소는 청담동의 조용한 카페이었다. 입구가 고풍스러운 카페는 들어서자 모던하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 실내디자인으로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백 서희는 조금은 구석진 자리에 있었다. 낮인데도 은은한 조명이 노란양장을 한 그녀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변호사님! 제 야위신 것 같아요?”

백 서희가 일어서서 그렇게 다정하게 말했다. 그의 진솔한 말이 참 좋았다.

“아! 예! 오래 간 만이예요? 요즘 잠을 못자서..원장님은 더욱 예뻐지는 것 같아요?”

분위기에 취한 탓인지 권 상렬은 잘하지 않는 말인사를 다하였다. 그만큼 우중충한  문서에 묻혀 있다가 이렇게 한번 나오면 그것도 미인 앞에서며 조금은 설레는 모양이다.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아서 갔고 잠시 후 원두커피를 두 잔가져다 주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원장님 서재를 정리하다가 보니까? 이런 것이 있어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백서 희가 내놓은 것은 낡은 일기장 하나이었다.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너무 오래되어 낡고 얼룩진 그런 것이었다. 권 상렬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때 그 노트에서 몇 장의 사진이 떨어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상렬의 어릴 적사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진 중. 고등학교 . 대학 때 사진까지 ..

그 사진들은 숨어서 급하게 찍은 듯 어떤 것들은 심하게 흔들려 초점이 거의 맞지 않은 것 들이었다. 사진을 본 순간 권상렬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오면서 숨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일기장을 펼치고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오늘 처음  훈 이를 보았다. 녀석은 아주 잘생기고 늠름했다. 건강하고 해맑은 얼굴. 그리고 깨끗한 옷차림과 예의바른 행동. 아이는 똑똑했고 이름이 권 상렬이라 했다. 어머니를 원망했지만 이렇게 먼발치에서나마 보니 어머니가 참 잘 하셨단 생각이 든다. 이 못난 엄마보다는 저렇게 훌륭한 부모에게서 자라는 일이 백 번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 새끼 한번 안아보고 싶다. 어떻게 태어난 자식인데 승환 씨의 유일한 핏줄인데 그러나 차마 나설 수가 없어 그렇게 숨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훌륭하게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사랑한다. 내 아들 훈아!”       

거기가지 읽고 더 이상 읽지를 못하고 일기장을 덮었다. 이런 수가 그럼 그 여인

최연화 씨가 진정 내 친어머니란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이 일기장 그리고 최연화의 마지막 말 한번만 어머니라고 불러 달라는 그 말이 생각났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 어찔했다. 그의 표정을 보고 백 서희가 당황하여 조심스럽게 물었다.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제가 괜한 짓을 한 것이 아닌지..“ 

권 상렬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괜찮습니다. 저는 어디 좀 가볼 곳이 생겨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자리를 일어났다.

“제 걱정 마시고 어서 가보세요! 조심하세요!”

백 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걱정스런 얼굴을 하였다. 상열은 정신없이 일기장을 들고 그곳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한적한 공원 하나가 나왔다. 상열은 그곳 나무 벤치를 찾아 앉았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공원은 한산하였다. 상열은 허겁지겁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은 훈이(상열)가 직접 찾아왔다. 그 애가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 붕이의 유골을 가지고 왔다. 평소에 기 붕이가 ‘엄마 내가 훈이 형을 엄마 앞에 꼭 데려다 줄게요!” 입버릇처럼 한 그 말을 지가 죽어서 뼈 가루로 오면서 지켰다. 미련한 녀석. 그놈이 그렇게 사람을 해칠 만큼 잔인한 녀석이 아닌데 어찌해서 그럴 일들을 저질렀는지? 불쌍한 녀석. 훈 이는 역시 멋지고 당당했다. 훔쳐서 볼 때보다 더욱 멋진 모습에 하마터면 이놈아 네가 네 엄마라고 소리칠 뻔하였다. 안 된다. 나는 엄마라고 그 애에게 해 준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애한테 혼란만 줄 뿐이다. 그저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고 축복이지 않는가? 더 이상 욕심내서는 안 된다. 내 아들 훈아! 이 엄마는 너의 존재감만으로 벅차다. “

상열은 일기장을 덮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아! 어머니~ 엄마 ! 흐 흐흑!”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이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지나는 사람이 있건 없건 그것을 개의하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지금까지 무언가 맺혀 있던 엉 얼 이가 다 후련하게 풀린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그것은 가장 최근의 것 이었다.

“암만 하여도 훈 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가 있는 것 같다.검은 양복장이 들이 따라 다니는 것도 불안하고 그래서 남장을 하기로 했다. 만약에 경우 훈 이가 위험해서 그것을 내가 막을 수 있다면 그것처럼 다행인 것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엄마로서 훈 이의 위험을 막는다면 그것은 하늘이 내게 주시는 축복이다. 사랑한다. 내 아들 훈아! 엄마는 너를 위해 못 해줄게 없다.”

그 대목은 글씨가 번져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오자 국가 수사 감정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고 최연화와 자신의 DNA 의 검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아버지 권 희철과 어머니 홍현희 여사와의 친자 관계도 확인하여 보았다. 만약의 경우 분명하게 해두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도리이고 만약에 두 분과의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은 가슴으로 자신을 키워 오늘날이 있게 해준 분이시니 더욱 존경하고 공경해야 될 것이다.

며칠 후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최연화 씨가 친 어머니 이었다. 그는 차를 바로 몰았다. 눈이 펑펑 쏟아져서 운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 산속까지 도착하여 실 컨 울었던 것이다.

일기장은 표지가 연꽃 사진으로 장식된 것 이었다. 최연화 는 연꽃을 무척 좋아 하였다 했다. 연화가 태어난 곳은 전주 이었다. 어려서는 유복한 가정이었다. 어머니가 연꽃을 꺾어 안은 태몽을 꾸었다 해서 이름도 연화 이었다. 그가 자란 전주는 덕 진 공원이 있다. 덕 진 공원은 연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연목 가득 연꽃이 피어날 때면 그 향기가 덕 진 공원에 가득하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 연꽃이 자라는 연못에는 황금잉어가 자라고 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의 모든 고통 속에서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처럼 연꽃의 그늘 속에서 황금잉어는 커가는 것이다.

상열이 아니 훈 이는 친엄마 최연화가 나서 자란 덕 진 공원을 한번 찾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처럼 고은 연꽃향기에 취해볼 참이다. 어머니를 느끼면서

어머니 최연화는 언제나 상열의 가슴속에 연꽃의 향기로 남을 것이다. 그 슬픈 향기를 간직 한 채..언제까지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