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서노(召西弩)의 가림굿

미륵산을 주봉으로 하여 용화산 성태산 천호 산을 거느린 마한의 옛 도시 금마를 지나 자동차로 20여분을 달리는 미륵산 기슭에 하늘신당이라는 굿당이 있었다. 굿당이란 신의 부름을 받은 예비무녀들이 내림굿을 받아 강신굿을 하는 곳을 말한다. 오름 골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몇 년 전만 해도 길이 없는 작은 마을에 불과 했지만 금마에서 낭산 으로 통하는 길이 뚫린 후로는 석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과 미륵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제법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진 곳이 되었다. 

하늘신당에 이르는 길에 제법 이름 있는 자가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처럼 서울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서 아주 큰굿을 벌리는 날이었다. 오늘 몸신을 모시는 여인은 옛날에 잘나가는 영화배우를 했다는 아주 아리따운 처녀 이었다. 그녀이름은 백소희(白素姬) 아직은 채 앳된 기가 가시지 않은 하얗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일 합작 영화” 천상의 사랑“를 촬영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져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여인이었다.(牛甫임인규作”마고여신석수미“ 36편 신녀(神女) 소서노(召西弩) 탄생 참조)

 그녀는 6개월여를 혼수상태에 있다가 어느 날 홀연히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말짱하게 일어났다. 몸은 정상 컨디션을 찾았지만 마음은 온전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자꾸 헛소리처럼 마고여신과 소서노를 찾았다. 마고여신은 부도지에 나오는 상상속의 인물이었고 소서노 역시 얼마 전 끝난 연속극“주몽”에 나오는 여인이었다. 그런 헛소리가 계속 될수록 주변의 사람들은 멀어져 갔다.

재벌가의 며느리로 혼담이 오가던 처지였으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알 수없는 헛소리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밥 먹듯 하였지만 그녀는 온전하지 못하였다. 외동딸하나 있는 것이 그 모양이니 조그만 중소기업을 하는 아버지는 미칠 것 같았다. 대대로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얼토당토않게 횡설수설하는 딸은 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렇다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살소동과 정신병원의 탈출을 겪으면서 아버지 백노한(白魯漢) 사장은 어찌 살던지 죽는 것 보다야 낳지 않겠는가 싶어 딸의 무녀의 길을 허락하였다. 서울의 하고많은 신당을 제쳐두고 이 한미한 전라도 시골신당을 찾은 것은 아직은 다른 사람들에게 딸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딸이 이곳을 지명하여 이곳에서 내림굿을 맡기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몸신은 마고여신이었다. 소위 많은 무녀들이 몸신을 받기를 강감찬 장군이나 을지문덕 혹은 박정희 대통령까지 그런 구체적인 인물의 몸신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렇게 신화적인 인물을 몸신으로 받는 것은 더욱 기이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신어머니는 제주도 무녀 하인지(河寅芝)이었다. 제주도는 아직도 서문대 할머니를 모시는 마고전설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무녀 하인지는 살아있는 마고할미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굿당  마당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제물로 받쳐져 있었다. 보통 굿은 돼지가 등장하는데 오늘은 특이하게도 송아지 한 마리가 제물로 받쳐져 있었다. 신화시대에는 신녀(신녀)라고 하여 무녀가 부족을 관장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때의 제사는 대개 노제로 치러졌다. 오늘의 강림 굿도 노제형식이었다. 커다란 걸개그림이 마당 한가운데 설치되었다.

그것은 민화 풍으로 그린 마고여신의 영정이었다.  머리에 해와 달을 이고 지구를 밟고 서있는 그곳에 아홉 마리의 용들이 오색구름을 피워 그녀를 호위하였고 양옆에는 그녀의 두 딸인 궁희(穹姬)와 소희(巢姬)가 배석하고 있었고 머리위에는 직녀성(織女星)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바라보고 웅성거렸다. 지금까지 보았던 걸개그림과는 영 다른 그림이었다.

“ 동방천왕의 선왕대신, 남방천왕의 서낭대신 , 서방천왕의 서낭대신 , 북방천왕의 서낭대신, 중앙천왕의 서낭대신 , 천황들은 기립하여 마고여신을 맞이하라! 천지의 창조주이고 대지의 어머니이시고 농사의 신이시며 길쌈의 직조자이시며 생명의 삼신이시며 영혼의 가림과 오름의 지배자이고 처음에 계셨으며 종내 에도 계실 육체이시고 영혼이시고 실존이시고 허구이신 단하나의 어머니요! 여신인 마고님은 강림하시어 당신이 택하시고 지정하신 당신의 딸이 당신을 맞이하게 임하소서!”

드디어 오늘의 주재자인 하인지의 공수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하얀 너울이 드리워진 신복을 입고 있었고 백소희도 하얀 소복과 같은 신복을 입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오늘의 굿의 음악은 커다란 북이 주재를 하고 있었다. 텅텅 울리는 북소리는 흔히 쓰이는 날라리나 징소리보다 무겁고 여운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밝은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두 추녀 밑으로 비를 피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소나기가 강해질수록 하인지와 백소희는 아랑곳하지 안했고 하인지가 잡은 서리화의 흔들림을 더욱 강렬해졌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몰입하고 있었으며 거침없는 하인지의  공수를  더욱 커져만 갔다.

“제석님께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북에는 북두칠성 직녀성에 밝은 별님! 임하소서! 여신이여! 오름이여! 삼신이여! 빌고 또 축원하나이다. 하나이시고 또 하나이신 존재 밖과 안에 머무시는 창조주여! 당신의 딸을 어여삐 여겨 맞이해주소서! 천추국의 동박삭은 천지일월에 임하시고 서해용궁에 부루님은 사해강물에 양주하시니 마고지나 희로지나 밝흠의 혼이시며 서천서역의 세인님이시여! 후천개벽의 전도자여! 미륵현신의 지밀이신 삼신이시여!   ”     

그때였다. 백소희가 엎드려 있는 제당에 무지갯빛이 어리더니 그 빛 속에 하얀 봉황이 날개를 접고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그 빛에 백소희가 빨려 들어갔다. 순간의 환영(幻影)에 사람들은 경악하였다. 그렇게 눈부신 하얀빛이 나는 커다란 새를 본적이 없었다. 정말 마고여신은 존재하는가? 그들은 그들의 눈을 의심하였다.

북을 치는 고수의 손이 빨라졌다.

“둥 둥 둥 둥 두둥둥”

하인지의 춤사위도 빨라졌다. 그녀는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된 양 너울너울 날개를 펴고 날고 있었다.

“ 착하고 착한 내 백성들이여! 나는 너희를 낳았고 거두어 드릴 처음이고 마지막 인 마고니라! 오늘 내사랑하는 딸 소서노를 내 제자로 삼아 나의 나라를 너희에게 보여줄 것이니 이는 너희가 버린 본성이요! 실달대성(實達 大城)과 허달대성(虛達大城)이다. 내 존재를 잊어버린 나의 백성들아! 이제 마고여신(麻姑女神)의 나라가 도래(到來) 했으니 이는 너희들이 바란 미륵의 세계요!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세계이니라.”

하인지의 공수는 어려운 문답 같은 공수이었다. 그러나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무섭게 내리던 소낙비는 잦아들고 있었고 햇빛이 나고 있었다.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람들은 무엇에 크게 얻어맞은 듯 멍한 상태에 처해졌으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잊어먹고 있었다. 죽은 듯이 엎어져 있던 백소희가 벌떡 일어나더니 제상에 놓여있던 철궁을 집어 들었다. 장정 몇이 들어도 들 수없는 무거운 철궁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들더니 화살을 먹여 시위를 당기었다.

“피 이 잉”

화살이 휭 하니 날아갔다. 그곳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있는 곳이었다. 화살이 그곳으로 날아가 나무에 박히는가 싶더니 나무가 쩍~ 하며 갈라졌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경악하였다. 보통 몸신을 받는 무녀들은 날이 선 작두를 타는 것이 보통인데 그녀는 철궁(鐵弓)을 잡아 시위를 당겼고 활이 맞힌 나무가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소서노(召西弩)의 이름을 풀이하면 부를 소(召)는= 부름 받은 여인 즉 큰무당을 나타내며 서녁서(西)는= 소서노의 큰아들 비루가 나라를 세운 미추홀의(옛지명)을 나타내는 글자로 부와명예를 겸비하며, 쇠뇌 노(弩)는= 강력한 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힘의 원천 즉 철의 여인을 나타내는 이름이니 무녀 소서노(召西弩)는 부와 명예를 겸비하고 굳세고 강건한 큰무당인 것이다.

백소희 그녀의 얼굴에 광채가 비쳐 흘렀다. 그녀는 이제 나약한 영화배우가 아닌 마고의 나라를 안내할 안내자인 마고의 딸이자 제자인 큰 무당 소서노(召西弩)로 탄생한 것이다.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