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수상한 방문객(訪問客)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지금 막 캐나다 발 대한항공이 도착되었고 사람들이 출국장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 출국장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밤색두루마기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출국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노인을 알아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다름 아닌 한국 동양화계의 거목 환전(幻田) 김은설(金恩雪) 선생이었다.

그는 산수화를 주로 그리는 동양화의 대가로 국전 심사위원을 여러 번 역임하였고 진품명품의 권위 있는 감정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 아흔아홉.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꼿꼿한 허리에 붉은 빛이 도는 혈색은 오십대의 중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정정한 풍채 이었다. 그런 그가 비서도 없이 홀로 이 출국장에는 무슨 일로 나왔을까?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연신 중절모를 눌러 써보지만 그래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고 지나갔다.

이때 출국장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둘레둘레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검은 선글라스 쓰고 있었는데 남자 셋에 늘씬하고 섹시한 금발의 여자 한명이었다. 김은설 선생도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검은 양복의 신사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는 다름 아닌 캐나다 비밀 연구소의 로버트 킴 박사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연락드린 로버트 킴입니다. 이렇게 몸소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환전선생이

“만나 뵙게 되어 있어 영광입니다. 보내 주신 서신은 잘 받았습니다. 인류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시는 연구를 하시는데 보탬이 된다니 그저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들은 서신으로만 연락을 했지 처음만나는 자리인 것 같았다. 로버트 킴 박사가 일행을 소개 하였다.

“이분은 세계물리학의 권위자 [양뚱]박사님 이십니다. 저희 쪽에서 물리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자 살집이 좋고 둥근 얼굴에 혈색이 좋아 보이고 구레나룻 수염을 한 뚱뚱한 신사가 악수를 청했다.

“환전선생님! 양뚱 입니다. 연세보다 젊어 보이십니다. 후덕한 인상이 참 좋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두툼한 손을 내밀며 그렇게 사람 좋게 웃는 그가 중국의 복신 포대화상을 닮았다고 생각한 환전선생은 덩달아 크게 웃었다. 참 기분이 좋은 사람이었다.

“다음은 키트 5044라는 기계를 발명하신 로봇분야의 석학 [카토오.스시] 박사이십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참 좋아하는 친구이지요!”

그렇게 소개받은 [카토오.스시]는  깡마른 체구에 키가 커서 올려다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은 입이 무엇인가를 웅얼거리는 것처럼 말을 했다.

“선생님은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뵙게 되어 광영입니다. 선생님의 날카로운 대나무 그림을 무척 좋아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서 이 사람은 참말로 로봇 같다고 느낀 김은설(金恩雪) 선생 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환전선생의 시선을 붙잡는 여인이 있었다. 금발머리가 어깨까지 치렁치렁 늘어졌고 가슴이 보일 듯 말듯 파진 웃옷에 엉덩이가 유난히 굴곡져서 가슴을 쿵쾅 거리게 하는 늘씬한 미녀이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환전 선생에게 다가와 덥석 안기며

“파파! 멋쟁이!  실버캡틴이세요!  아이 러브 유! 파파!”

그렇게 이야기 하며 볼에다 키스를 퍼 부었다. 환전선생은 당황했다. 구십 평생 이렇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받아본 적이 없고 체면을 중시하는 학자로서 그것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출국장에서 이런 행동은 신문지면을 장식할 이야기 꺼리 이었다.

“허 험! 이것 좀 놓고 말씀하세요! 답답해요! 환영합니다. 아이 구!”

당황해서 쩔쩔매는 김은설 선생을 웃으며 바라보던 로버트 킴 박사가

“저런 선생님이 당황하셨네! [제인] 박사님! 그만 하세요! 너무 애정과 정열이 넘쳐서 탈이라니까?  선생님! 우리의 홍일점 심리학자 [제인] 박사입니다. 결례했더라도 부디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이야기 하며 [제인] 박사를 환전선생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녀가 마지못해 떨어지는 순간 황당했던 김은설 박사를 자극하는 향수는 샤넬 50023 이었다. 그 장미향이 그녀의 제취와 함께 온몸으로 전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김은설 선생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랫도리가 봉긋하게 올라왔다. 청춘이 다시 돌아온 것 일까?   

출국장을 빠져나온 일행은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환전 김은설 선생의 집으로 향하였다. 환전 선생의 집은 정릉에 있었다. 정릉은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청전 지역이었다. 숲이 우거져 있고 공기가 좋아 서울이 아닌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차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로버트 킴 박사 일행은 대부분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처지여서 책으로만 접하던 풍경하고 달라 보이는 풍경이 몹시 놀라고 있었다. 한국도 이제 동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견줄만한 동방의 빛이 되고 있었다. 하긴 만국(萬國)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아닌가?

“역시 신비한 나라야! 이번에는 기필코 동양철학의 근간인 공간미학에 대한 비밀을 풀어 ”유체이탈“실험에 성공할 것이다. 요즘 들어 바알(지소)신의 냉기어린 시선이 꿈속에서도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으니,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성공해야 돼!”

로버트 킴 박사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