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자부선사(紫府仙師)의 64괘(六十四卦) 청구기문(靑邱奇問)
한편 모자혈궁(母子血穹)에 들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운 마고여신의 수호후천대장군(守護後天大將軍) 죤론은 새털처럼 온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는 지금 비우는 것의 깨달음을 깨달아 제6차원(無世界)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를 짓눌렀던 것은 친모에게 버림받아 타국에 입양되어 성장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울분과 방황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궁 같은 모자혈궁(母子血穹)의 기운은 그를 깨끗이 미영(微靈 =태어나기 이전의 영혼) 상태로 환원시켜 놓았다. 그의 온몸에는 상서로운 자줏빛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깨달은 자만이 얻는 광영(光榮)이었다. 그의 마음은 고요한 공기 같았다. 흔들리는 데로 흔들리고 돌아가는 데로 돌아가고 그리자 조차 깨닫지 못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 그것은 정녕 창조 이전의 세계이었다. 그는 이제 수호신 비슈누(Vishau)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역시! 마고여신님은 선택은 틀리지 안했소! 이렇게 빨리 자기 자신을 털어내고 무의세계에 도달할 줄은 몰랐소! 마고후천 대장군님! 이제 당신은 제가 가지고 있는 자부선생(紫府先生)의 기문둔갑술 64쾌상(卦像)을 배우게 될 것이요! 우선 이 갑옷으로 갈아입으시지요! “
언제 나타났는지 치우천왕 웅이 그렇게 공손하게 말하자 하늘하늘한 천의를 입은 정령이 자주 빛나는 갑옷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고 또 다른 정령둘이 존론에게 그 갑옷을 입혀 주었다. 갑옷은 맞춤처럼 몸에 착 맞았다. 갑옷을 입은 존론의 늠름한 얼굴은 광채가 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치우천왕 웅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음! 이제 중천시대이후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가져 볼 수가 있겠군! 저 떨 벌어진 어깨. 빈틈없는 위엄. 속전속결로 깨닫는 머리 까지 내 후계자 마고후천대장군으로 손색이 없어! 역시 마고 여신님은 탁월하신 분이야!”
그는 중국황제 헌원과의 전투에서 도깨비 모습으로 무서운 명성을 떨쳐 승리한 장수중에 장수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변하고 변했다. 저 사악한 바알(지소)신이 다스렸던 중천시대는 이제 지소가 오미의 난(五味의難)을 일으켰던 그때보다 더욱 사악해져 있고 당요(唐堯)가 오행의변(五行의變)을 일으켰던 그때보다 더욱 혼미해져 이제 물이 아닌 불로 심판해야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거기다 바알(지소)은 미련하게도 카미의별(木星)을 지구에 충돌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좀 더 이지적이고 강한 대장군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존론은 다듬어지지 안했지만 훌륭한 재목감이었다. 그렇게 치우천왕 웅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색 빛 구름이 몰려오는 곳에 유니콘 을 탄 자색옷의 신선이 풍화선(風火扇)을 들고 그들 앞으로 오더니 유니콘이 두 다리를 꿇어 엎디자 여유롭게 내려서 다가오는데 걸어오는지 날아오는지 그 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어서 오십시요! 자부선사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이 친구가 제가 말씀드린 마고여신님의 선택을 받은 마고후천대장군입니다. 모쪼록 선사님의 청구기문을 전수하셔서 마고여신님을 보필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 친구는 이곳에서 모자혈궁(母子血宮)을 통해 미영(微靈)으로 거듭난 친구입니다.”
치우천왕 웅이 자부선사에게 존룐을 소개 시켜 주었다. 존룐은 머리를 깊숙이 숙여 예를 차렸다. 자부선사는 알듯 모를 듯 애매한 미소를 띠며 존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음! 어쩌면 이리도 자네의 모습을 닮았는가? 어릴 적 자네를 보는 것 같군! 체격조건이나 순발력과 불같이 타오르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어! 이얍!”
하고 갑자기 풍화선(風火扇)에 잔뜩 힘을 가해 존론의 목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발달한 존룐이지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인 무방비 상태의 일격은 존룐에게 심각한 타격을 준 것 같았다. 미쳐 비명도 못 지르고 있는데 한순간에 온몸이 모래알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어 어 어 ! 이런 일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바람이 휙 부니 먼지처럼 날려버렸다. 그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의 정신은 말짱한데 이런 기막힌 일이 있는가?
“점에서 선이 생기고 선에서 면이 생기고 그리고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의 변형이 시작되고 그렇게 그림자는 무너지고 또다시 일그러진 면이 되고 선이 되고 점이 되고 소멸되어 간다. 물은 물로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담아주는 물체의 형태를 따라가고 불은 태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고체가 녹여 액체를 만들고 액체를 굳혀 또 다시 고체를 만든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지만 부딪치는 형태를 달래거나 파괴하기도 한다. 바람을 거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천지는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사라진다.”
자부선사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불어 모래를 쌓아가고 없어졌던 자신의 몸이 다시 형태를 갖추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네가 본 것이 허상이더냐! 진실이더냐! 마음에 따라 허상도 되고 진실도 되는 것이다. 역사귀신(役事鬼神=귀신을 구사하는 법)은둔(隱遁)변형(變形)참위(讖緯=예언)복기(服氣)태식(胎息=뱃속의아이처럼 숨 쉬는 법)정(精)신(神)기(氣)의 연단(練丹)과내단(內丹)과 좌망(坐忘)하고 불괴(不壞=무너지지 않고)불매(不昧=어둡지 않고)불염(不染=물들지 않는)상태의 도를 얻어 일만 시비(一萬是非) 공(空)하라! 태극(太極)은 우주(宇宙)이니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며 기(氣)가 혼절(昏絶)하여 합(合)이 상충(相衝)하고 충(衝)이 환(換)하면 생흡생(生洽生)이라.”
계속되는 자부선사의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의 눈앞에 별들의 무리가 모였다가 사라졌다가 회전하는 하늘이 나타났다가 불꽃이 이는 구름이 나타나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깨우쳐 지는 것이었다. 원래 티끌 같은 존재가 인간이 되고 인간이 다시 티끌이 되어 사라지는 이치이니 세상만물의 본체를 허물면 다 같아지고 다시 형상화 하면 다시 그 만물 본연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원래부터 없는 것을 있다고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하고 그것은 공(空)에서 볼 때 무의미 한 것이다. 사물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아닌 것이다. 그렇게 자부선사의 잠언은 계속 되었고 자신의 몸이 눈앞에서 몇 천 번씩 사라졌다가 다시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며 존룐을 그렇게 64괘의 청구기문을 익혀갔다.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