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미륵사지에서 만난 이상한 노인         

2월인데도 제법 날씨가 춥다. 석간 기부영((錫幹 奇浮永)은 오늘도 대충 농사일을 정리하고 습관처럼 미륵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서 탑 공사 가림 막은 이번에 출토되었다는 사리함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하하하 이제 서동설화도 다 팔아먹었군?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는 가짜로 밝혀졌다고 신문마다 대문짝 만 하게 실렸으니, 선화공주는 없고 사택기루의 딸 왕후만 있었다니? 이제 이 쓸쓸한 미륵사지가 더 쓸쓸해지겠군! 하하하”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저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민심이 웃었다. 과연 사람들은 백제인의 자존심은 가지고 있는가?  무왕 정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백제의 혼(百濟魂) 마고의 혼(麻姑魂)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허한 마음으로 동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는 어느새 서쪽에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면 그는 꼭 이곳 동탑을 빙빙 도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복원된 동탑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1993년 노태우정권시절 복원된 동탑은 예산문제로 징을 사용하지 않고 톱을 사용하여 돌을 절제 하여 여기저기 톱날 자국이 선명하고 꿈을 조각했던 백제 석공의 얼이 담겨져 있지 않는 그냥 조형물일 뿐이었다. 화강암 석재만 해도 2700톤 연인원 4만 5000명 공사비 29억이나 들어간 공사치고는 너무 허술한 복원이었다. 문화재 청장을 지낸 어떤 인사는 당장 폭파시켜 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이다.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문화재를 어떻게 취급하는가? 일 면목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항상 입맛이 썼다.

“이봐! 허어 젊은 사람이 잠도 못 자게 왜 그리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가?”

문득 호통 소리에 놀라 뒤 돌아보니 탑 그늘 밑에 웬 걸인 노인이 맨바닥에 책을 괴고 잠을 자다가 호통을 쳤다.

“아유! 깜짝이야! 웬 노인 양반이 목소리가 그리 크대요? 꼭 기차 화통 삶아 자신 것 같소이다. 하하하”

기부 영은 짐짓 놀란 화풀이로 그렇게 농지거리 하대를 했다. 노인은 마지못해 부스스 일어나며 희미한 눈으로 그를 벌레 보듯 바라보았다. 노인은 깡마른 몸에 훌쭉 들어간 두볼 뚝 불거진 광대뼈에 듬성듬성한 수염. 털모자를 푹 쓰고 있어서 얼굴이 반쯤 밖에 보이지 안했다.

“뭐시여! 기차 화통! 이런 떼 놈만도 못한 놈! 나이 살이나 훑어 먹은 것 같은데 내가 네 친구냐! 이 썩어죽일 놈!”

노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 마치 주먹이라도 날아올 분위기 이었다. 기부 영은 아차 싶었다. 이런 난처한 일이 있나! 공연히 심기가 불편하여 거지 노인 상대로 농지거리 했다가 큰 봉변이라도 당할 것만 같았다.

“아이고! 노인장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냥 공연히 친밀감이 들어서 한마디 한 것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이런 추운 날에 찬 돌바닥에서 주무시다가는 큰일 나십니다. 추우실터인데 제가 사과하는 뜻으로 막걸리 한잔 사겠습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기부 영은 얼른 노인한테 다가 가서 주섬주섬 신발을 신으려는 것을 도와주면서 노인이 베고 잠자던 책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책은 모두 누런 고서(古書)들이었다. 더러는 한서(漢書)였고 더러는 일서(日書) 그리고 영문서적(英文書籍)까지 있었다.

“거참! 희한한 일일세! 노인양반이 이런 어려운 원서들을 어떻게 가지고 계시지! 베개 삼아 헌 책방에서 구하신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불이 번쩍 났다. 뒤돌아보니 노인 양반이 운동화 짝을 들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녀석! 이놈아! 네놈이 내 귀한 책은 왜 손을 대고 지랄이야! 한참 꿈에 선화황후님 무릎 베고 달게 한숨 자는데 잠은 깨놓고 지랄인데다 거기다 귀한 내 책까지 탐을 내야!”

기부 영은 얼 얼거리는 뒤통수를 만지며 인상을 쓰고 노인을 바라다보았다.

“야! 이놈아! 네 얼굴에 무슨 똥이라도 묻었나! 그리 째려보게! 속도 출출 한데 앞장 서거라! 네놈이 막걸리 산다고 안했냐! 어이! 앞장서 야!”

이거야 적반하장이고 어구창 나는 일이었다. 무슨 이런 개차반 같은 노인이 있나 싶었다. 어느새 노인은 휘적휘적 걸어서 못 옆을 지나고 있었다.

“아! 이놈아! 나 배고프다. 얼른 안와! 빨리 와라! 빨리!”

노인은 손을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기부 영을 바라보았다. 기부 영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공연히 말 한번 잘못 했다가 된통 당할 것 같았다. 참! 오늘 일진 참으로 재수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노인하고 도착한곳은 미륵산 순두부 집이었다. 주말로 아닌데 제법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노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치 자기가 돈을 낼 것처럼 종업원을 부르더니 음식을 주문하였다. 기부 영은 왠지 잘못 걸렸다 싶어 볼이 퉁퉁 부어 있는데,

“아! 이놈아! 개구리 볼 하지 말고 인상 풀어! 네놈 보아하니 나 밥 한 그릇 사 주었다고 살림 말아먹을 놈 갖지 않으니, 그리고 이놈아! 나는 공짜 밥은 안 먹는데 가만히 보니 네놈이 이곳 미륵사지를 수시로 들락거리는데 꼴을 보아하니 대학교수 같지는 않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 같은데 네가 살아도 네놈보다 더 살았으니 궁금한 것 속 시원하게 풀어주마! 그리니 우선 배창자부터 채우고 보자! 아! 그놈 참 맛있게 생겼다!”

노인이 그렇게 말하고 막 종업원이 날아온 백숙의 다리를 하나 냉큼 뜯어서 한입 우걱우걱 몰아놓고 우물거렸다. 그런 노인의 넉살을 보니 기부 영은 어이가 없어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 되었건 참 재미있는 노인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 노인이 백숙다리를 하나 쭉 뜯어서 건네주며 말했다.

“야! 이놈아! 이놈이 날아가는 기러기 팬티를 봤나! 이놈아! 백숙 식으면 맛이 없다. 우선 뜯고 보자!”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