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무왕(武王)부여장(夫餘璋)의 일곱가지 보물(七寶)
“커 잘 먹었다. 오래간만에 포식을 했더니 배가 아주 든든하구나! 야! 이놈아 ! 뭐 하냐! 가서 커피 빼오지 않고? 이집 커피 맛이 그래도 끝내준다.”
노인은 입에 묻은 반질반질한 기름을 휴지로 닦으며 기부 영을 채근하였다. 이거야 원, 말끝마다 이놈저놈을 하지 않나! 이제 제멋대로 백숙을 시켜 드시더니 이번에는 커피 심부름이라! 하지만 어쩌라! 염치없는 노인네 비위짱 거스르면 이번에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기부 영은 얼른 일어나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빼가지고 돌아왔다.
“하하하 녀석! 네놈은 밸도없냐! 꼭 이토 히로부미 말에 놀아나던 친일파 역사학자 놈들 같구나! 돈 만원에 조상의 문화를 팔아먹은 넋 빠진 놈들 같으니라고?”
노인은 이제 대놓고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았다. 이제 밥도 사주었겠다. 더 이상 노인하고 같이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기부 영은 카운터에서 밥값 계산을 하고 얼른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켈로 퍼의 시동을 걸었다.
“거 참! 이상한 노인일세! 분명 보통 노인은 아닌데 머리가 이상한 노인인가 아무튼 오늘 일진 참 험하다. 험해!”
그렇게 투덜대며 차를 모는데
“야! 이놈아! 사람 없는데 험담하면 그게 졸장부지 남자냐! 불알 떼서 개나 줘라! 으흐흐흐”
어느새 차를 탔는지 뒤 자석에 노인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너무 놀라 차를 급정거 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차가 섰다.
“야! 이놈아! 굴러 떨어져! 면허도 없는 놈이 건방지게 달구지는 끌고 다니는 것 아니냐! 이거야! 원 요새 젊은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낄낄낄 이놈아 귀신 본 것 아니니 어서 말통대왕 쌍 능으로 가자! 내 거기 가서 네놈에게 밥값 을 계산해 주마! 하하하 ”
노인은 그러더니 뒷좌석에 두 다리를 뻗고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았다. 이제 어이가 없으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래도 노인네가 어린애처럼 귀여운 데가 있었다. 미륵사지에서 말통 대왕(쌍 능)까지도 차로 10 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기부 영은 곤히 잠자는 노인이 깰까봐 일부러 천천히 갓길을 잡아 차를 달렸다. 노인은 참! 달게도 잠을 잤다. 쌍능에 도착해 조용히 시동을 끄고 쌍 능 옆 잔디에 벌렁 누었다. 오래간만에 바라보는 하늘이었다. 참! 요즘에는 하늘 볼 날이 드물다.
“아! 참! 달게 잘 잤다. 네놈이 꼴은 그래도 어른 모실 줄은 아는구나! 허 놈! 이놈아! 잔디에 그렇게 누워 있으면 큰일 난다. 세상이 하 수상해 병균들이 득시글거리지 않느냐!”
언제 일어났는지 노인이 차에서 내리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이제 노인에게 정이 들었는지 그 핀잔주는 말씨가 은근히 귀에 익었다. 노인은 곁에 와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한 대 피어 물었다. 그리고 휴우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참! 백제는 인간적이고도 슬픈 나라이지. 고구려. 신라. 모두 다 건국신화가 있지만 그 신화적인 전설이 없는 인간이 세운 나라가 백제이지! 백제는 엄밀히 말해 소서노라는 여걸이 세운 나라이지. 결국 자기 아들의 형제간 골육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온 조의 나라를 쳐들어온 큰아들 비류를 스스로 처단하고 마음에 병을 얻어 죽은 참된 여걸이지. 백제는 귀족서열의 나라이었다. 엄밀히 말해 임금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나라이었지? 물론 13 대 근초고왕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왕도 있었지만 대개는 항상 전쟁과 8대 대성 귀족들과의 의견대립으로 힘들어 했지. 특히 이곳에 잠들어 있는 30대 무왕 부여 장은 더욱 모든 것이 어려웠지! 어떻게 보면 이분처럼 드라마틱하고 이야기가 많은 삶을 사신 분은 드물어!”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노인은 그야말로 달변이었다. 기부 영은 어느새 노인의 입만 바라보면서 머리에는 그 옛날 백제무왕시절의 환상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 어린 시절 마를 캐서 팔던 이야기.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 이런 것은 많이 알려진 것이니 내 이야기를 안 하고, 대신 알려지지 않은 무왕의 일곱 가지 보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무왕이 이곳 익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익산이란 곳이 후세미륵을 위해 준비된 곳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미륵사지를 창건할 때 불교의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의 후천미륵을 위한 불교 도량으로 창건하였고 자신을 전륜대왕으로 인식해서 그 당시 최고의 백제세공들의 손을 빌어 비밀리에 전륜대왕의 일곱 가지 보물을 만들었지. 그 보물들은 금으로 만든 태양을 상징하는 여덟 바퀴의 금륜보(金輪寶), 어둠을 물리친다는 흑진주로 만든 빛나는 여의주(如意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절대 미인상 수정옥(水晶玉)으로 만든 옥녀 보(玉女寶), 노란 호박으로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낸다는 수장 보(守藏寶),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부릴 수 있는 코끼리를 탄 장군상 장보(將寶) 붉은 홍옥으로 만든 날개달린 천마상(馬寶), 물위로 마음대로 걸을 수 있고 안개를 생성시킨다는 신선 상 상보(像寶)가 그것이지 ”
노인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기부 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물론 전륜대왕의 칠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본떠서 무왕이 일곱 가지 보물을 만들었다니 그러면 그 일곱 가지 보물은 어디에 있단 말 인가?
“그런데 이 사실은 백제가 망하면서 보물도 없어졌고 그 사실자체를 그냥 묻혀 버렸지. 그런데 그것이 처음 대두된 것이 이곳 말통대왕 무덤이지!
한국에 초대통감을 온 이토 히로부미가 비밀리에 도굴꾼을 사서 이 무덤을 도굴하면서 쉬쉬 사람들 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지! 이 일곱 가지 보물을 차지하는 사람이 세계를 정복하는 사람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지?”
기부 영은 숨이 탁 멈추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무왕의 일곱 가지 보물로 어이가 없는데 보물을 다 차지하는 사람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정복자가 된다고, 거기다가 그 비밀을 안 이토 히로부미가 이 무덤을 도굴했다고 그럼 그 보물을 차지했단 말인가? 아니면 그 보물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제 기부 영은 노인의 이야기에 심취되어 저녁놀이 지고 있다는 사실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