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蓮花)

1.함박눈

눈이 내린다. 탐스러운 목화송이마냥 그렇게 풍성하게 내리는 눈은 산을 덮고 벌판을 덮고 지붕을 덮고 온천지를 하얀 눈 세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눈은 겨울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것이어서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고 처녀들은 눈이 내리면 첫 테이트와 첫 키스를 연상하면 설레어 하고 아이들은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 눈에서 뒹굴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눈이 내려도 너무 내리는 날이었다. 일기예보는 60년 만에 처음 내리는 폭설이라도 연속적으로 재난 방송을 내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커녕 강아지 꼬리도 찾아보기 힘든 삭막한 풍경이었다. 간간히 부는 매서운 겨울 삭풍이 나무를 흔들어 우수수 눈사태를 만들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찾아보기 쉬운 참새 떼마저 보이지 않는 눈보라의 날이었다.

이곳은 작은 소읍도시 에 있는 공동묘지다. 이런 날의 공동묘지는 여기저기 흩어져 산재해있는 묘지의 봉분들이 눈 속에 덮인 장독대처럼 보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한쪽 모퉁이 한사나이가 눈사람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동상인양 아니면 죽어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 그 사내의 어깨가 간간히 흔들리면서 울음소리가 흘려 나왔다.

“으흐흑 어머니! 어머니!”

도대체 무슨 사연이란 말인가? 더구나 이 심한 폭설 속에 인적이 드문 인 공동묘지에서 흐느끼는 이 사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무덤은 무덤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허물어진 그런 봉분의 무덤이 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춥지도 않는지 아니면 얼어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인지 그렇게 얼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왜? 왜? 저를 천하에 몹쓸 불효자로 만드셨단 말입니까? 어머니! 얼마 나  얼마나 이 자식을 원망하셨고 얼마나 보고 싶으셨습니까?  도대체 사회적 인습이 무엇이며 아들의 체면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평생에 단하나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이 아들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가셨습니까? 이제 와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시면 찢어지는 이 가슴은 어찌 하란 말입니까? 어머니! 어머니! 으흐흑”    

그는 미칠 듯이 몸부림쳤다. 늑대 울음소리 같은 그의 절규는 너무나도 처절하고 처절하였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그렇담 이 부실한 무덤이 이사내의 어머니 무덤이란 말인가? 사내의 모습으로 보아 사내는 상당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자 같았다. 털이 풍성한 외투에 가죽장갑. 준수한 얼굴에 금테 안경. 나이는 삼십대 후반 정도 됨직한 이사내의 모습에 견주어 봉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덤은 이 한가지 만 보아도 사내가 통곡하리만치 잘못한 상황 같았다.

“어머니! 어머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갑자기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습니까? 평소에 그리 보고 싶고 찾아 헤매던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이름 없는 이 공동묘지에 게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머니!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를 이토록 쓸쓸한 곳에 계시게 했습니까? 왜? 왜?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셨습니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어떤 모습이건 나의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어머니! 왜 그리 숨어 사시다가 보아주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임종을 맞으신 겁니까? 어머니! 어머니!”

그의 절규와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매서운 바람에 입이 꽁꽁 얼 지경인데도 사내는 마치 장승처럼 그렇게 굳어서 땅을 치며 통곡을 계속하였다. 매서운 눈바람만 무정하게 사내를 훑고 지나갔다.

이 사내. 권 상열(權相烈)은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법률자문회사. “메인“의 대표변호사이었다. 아버지 권희철(權熙喆) 은 전법무부 장관이었다. 이런 막강한 집안의 사내가 이 산속 그것도 허름한 공동묘지 한 묘지에서 통곡하는 사연은 이러 하였다. 권 상렬 변호사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맡는 사건마다 승소하여 그 이름을 날렸고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법무부장관인 아버지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었다. 그는 타고난 열정에다 성실한 자료수집 그리고 달변이라고 불리는 그의 언변이 사람들을 움직여 맡는 사건마다 승소로 이끄는 비결이었다.

그는 어느 날 대학교 때부터 은사인 하태곤(河泰昆) 판사의 전화를 받았다.

“어 권 군인가? 그동안 잘 지냈나! 여전히 바쁘고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자네가 국선변호를 하나 맡아주어야 하겠네!”

권 상열은 의아해 하였다. 국선 변호는 자기 말고도 젊은 변호사들이 많이 있었다. 구태여 중견변호사인 자기에게 국선 변호를 맡길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저~선생님! 그런데 왜? 제가.”

권 상열은 조심스럽게 그렇게 물었다. 오늘의 자기가 있기까지는 은사님의 도움이 컸다. 그러니 도저히 뿌리칠 수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자네 아니면 안 되는 일일세! 돈암동 호텔 카사노바  살인사건의 유기붕(劉奇鵬)이 자네를 지명했어! 자네 아니면 재판을 받지 않겠대!”

하판사의 말은 단호하였다. 돈암동 호텔 카사노바 살인사건이라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명한 사건이었고 그 살인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행 때문에 범인의 정신분석까지 실시할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왜? 그자가 구 태어 자기를 지명했을까? 권변호사는 썩 내키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은사이신 선생님이 일부러 전화까지 해주셨으니 마땅치 안 해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을 맡고 1차 접견이 있었다. 접견실에서 처음본 범인 유기붕은 비록 수의를 입고 있었지만 이목구비가 두렷하게 잘생긴 외모에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치고는 얄미울 정도로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광기를 뿜어대는 그 눈매를 빼면 그는 평범한 회사원 같은 인상이었다.

“유기붕씨! 당신을 나를 지명하셨소! 나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하신다고 하셨다고?”

권 상열은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런 범인들하고의 대면은 우선 당당하게 기선을 제압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했다.

“당신이 그 유명한 권상열 변호사요! 역시 잘생겼군? 영화배우 해도 되겠네! 치 이!”

유기붕은 마치 비꼬기라도 하듯이 야유조로 말했다. 권변호사는 울컥 했으나 이것도 하나의 심리전이 될 수 있으므로 꾹 참았다.

“ 그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이제 당신의 범행동기에 대해 말해보시오?  왜? 그런 무참한 일을 저질렀소!”

권변호사의 말에 유기붕이는 얼굴을 한번 실룩하더니 엉뚱한 말을 하였다.

“그래! 행복하십니까? 자녀는 얼마나 두셨는지요? 어머니! 어머니는 계신가요?”

이게 뭐하자는 수작인가? 주객이 전도되어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를 심문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런 말장난을 하자고 바쁜 자기를 불렀단 말인가?  상열은 은근히 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봐요! 유기붕씨! 바쁜 사람 불러놓고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당신이 왜? 그것을 물어 사건에 관계된 이야기만 합시다. 우리!”

권 상열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자제하며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러나 유기붕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그렇지요! 물어보세요! 대답해 드릴 테니까?”

하고는 권 상열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한방 줘 갈기고 싶은 것을 다 시 한번 잡아 누르며

“그래! 범행동기가 뭐요! 검찰에서는 정의구현이라고 했다는데 어찌 살인이 정의구현이 된단 말이요?”

그렇게 조용히 물었다.

“정의구현이고 말구요? 난 사회의 독버섯을 제거했단 말입니다. 그놈은 악마이었소! 그놈이 살았다면 변호사 선생도 죽거나 아니면  곤경에 처 했을 테니까? 어쩌면 선생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될 일이란 말이요? 으 히히히 헤헤헤 으 히히히 ”

그는  이상한 요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살인을 정당화함은 물론 거기에 권변호사 자신이 죽을 것을 살려주었다고 이것 순 미친놈이었다. 권 상열은 그의 전과 기록을 훑어보았다.  그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소년원등을 전전하며 절도. 강간. 사기. 강도 등전과만 해도 10여개나 되는  아주 흉악한 자이었다. 그러나 r의 최근 몇 년 기록에는 전과가 없었다.

 그 점이 불가사의 했지만..이번 사건은 자기의 두목을 난자한 사건으로 아무리 폭력배간의 이권 다툼이라 해도 너무 잔인한 것이었다. 거기다 이런 요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정신조차도 온전한 자가 아닌 것 같았다. 권 상열은 농락당한 것 같아 입이 썼다.

“이봐! 유 기붕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당신이 무엇인데 사람 목숨을 빼앗아 정의 구현을 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모시던 두목 배 동 길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이요! 그러면  당신잘못을  반성해야 되잖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인간이 인간을 해할 권리는 없는 것이요! 당신이 그런 요설로 변명할 이유가 안 된단 말이요!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야지 하찮은 강아지도 자기 잘못을 알면 꼬리를 감추는 법이거늘 당신은 당신을 도와주러온 변호사인 나에게 까지도 말도 안 되는 요설을 늘어놓다니 나는 당신을 위해 변호할 아무것도 없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소! 나는 가겠소!”

권 상열 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이런 자와 단 1분이라도 더 마주하고 싶지 안했다.  그런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유기붕이란 자는.. 그러자 유기붕이 갑자기 히스테리하게 웃었다.

“으 히 히히히 재밌어! 나는 어디까지나 변호사 양반 당신을 구해 준거란 말이오! 그러나 그렀다고 당신에게 공치사를 하는 것은 아니니  그럼 잘 가시오! 가다가 내 영치 물을 한번 살펴보시오!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요? 자신의 근본도 모르는 자가 큰소리라니 으 히히히  재밌어! 역시 인생은 재밌어! 으 히히히”

권변호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교도관이 달려와 유기 붕을 데리고 갔다. 그렇게 끌려가면서도 유기붕은 그 기분 나쁜 웃음을 멈추지 안했다. 마치 자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래!  그때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 그놈의 말대로 그놈 영치 물을 확인 하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는...”

권 상열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매운 눈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눈은 더욱 극성스럽게 내려 앞뒤 분간이 안 되었다. 그는 일어났다. 그러다가 주저앉았다. 차가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어서 쥐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주저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산소에 큰절을 하였다.

“어머니 ! 가봐야 하겠어요! 일간 다시 올게요! 그동안 편안히 계셔요! 어머니”

그리고 그는 무덤을 한번 둘러보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은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내려 있었다. 그렇게 푹푹 빠져서 산을 내려가는 그의 뒤에서 눈바람이 그의 발자국을 힁허케 지우고 지나갔다. 눈은 사정없이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牛 甫  임 인 규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