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새벽의 이상한 여행(旅行)
이른 새벽이었다.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은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택시 한 대가 터미널 앞에 정차하고 얼굴이 부스스한 석간 기부영(錫幹 奇浮永)이 서둘러 내려 택시비를 치르고 정신없이 터미널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섰다.
“어르신 이번에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 그리고 제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아셨고요? ”
새벽 댓바람에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간단한 옷차림으로 시외버스 정류장에 나온 기부영(錫幹 奇浮永)은 긴 나무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비스듬한 빵모자를 눌러쓴 노인에게 다가가 퉁명스럽게 그렇게 투덜거렸다. 노인은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자식! 나이 살이나 먹어가지고 투덜거리기는 야! 인마! 아침 일찍 일어나면 건강에도 좋고, 그리고 이런 핑계로 훌쩍 여행이라도 한번 하는 게지? 자! 차 출발한다. 어서 표나 사가지고 와! 이 녀석아!”
그렇게 한마디 힁허케 던지고는 뚜벅뚜벅 개찰구로 걸어갔다. 정말 이 상황을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게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 빼빼 말라깽이 노인 앞에서는 주눅이 드니 참으로 이상했다. 기부영은 서둘러 서산행 버스표를 사서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노인은 미리 좌석을 잡고 앉아 김밥을 오물거리면서 기부영에게 한줄 내밀었다.
“자! 식전해장부터 서둘러 왔을 테니 요기나 우선해라! 이래봬도 주현동 곰보 할미 김밥이다. 한번 맛보면 마약처럼 빠져든다고 해서 마약김밥이다. 요놈아!”
영감은 언제나 말끝마다 요놈 저놈이다. 자기도 이제 오십대 후반이니 내일 모레면 육십인데 너무하다 싶지만 이상하게 한마디 항의도 못하고 끌려 다니는 자신이 이상하고도 얄궂었다.
“저! 영감님! 그나저나 어디를 가시는지요! 행선지나 알고 가야하지 않는가요? 서산행 이니 서산을 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요! 혹 서산마애삼존불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닌지요?”
기부영이 김밥하나를 우물거리면서 그렇게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영감이 피식 웃으며
“그 녀석!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눈치는 빤해가지고? 그래! 부처님을 보러 간다. 그것도 이 모진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를 뵈러 가는 길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기부영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데 무슨 노인네 손때가 그렇게 매운지 어깨가 후끈하였다. 그렇게 해놓고 노인은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기부영의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다. 아무리 이 노인네가 천방지축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느닷없이 “서산마애삼존불” 이라니?
그는 서둘러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인터넷을 뒤져 사전지식을 충전해 저 이상한 영감님의 야코를 팍 눌러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84호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네이버 출처-
“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런 얄팍한 지식에 의존하니 네놈이 참 진실을 보는 눈을 기르지 못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머리 쓰지 말고 한숨 자둬라! 미련한 놈!”
자는 줄 알았던 노인이 잠시 눈을 떠서 힐끔 기부영의 하는 모양새를 보더니 그렇게 한번 이야기를 하고 도로 눈을 감았다.
“ 참내! 노인네 하고는? 도대체 뭐야! 내가 진실을 보지 못한다니? 치! 자기는 그럼 모든 것을 다 아는 척척박사인가? 그런데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이상하게 저 이상한 영감하고 엮여서 이게 무슨 꼴인가 말이다. 저 이상한 영감은 도대체 서산마애삼존불에게 무슨 진실을 본다 말인가? ”
기부영은 기분이 상해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이상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은 주름투성이 인데다 쪼글쪼글 해서 정말 볼품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근접할 수없는 위엄이 있었다. 그 얼굴은 영특한 서기마저 서린 것 같이 보였다. 처음 미륵사지 동탑에서 노인을 만났을 때도 노인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책 몇 권을 베개 삼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자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인은 참 태평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영감은 누구란 말인가?
마고여신의나라(麻姑女神國)
